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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낡은 모텔이 미술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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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인들의 제주 원도심 살리기

미술관이 된 낡은 모텔과 도립병원
카페가 된 쌀집, 책방이 된 식당
호텔에 문을 연 작은 갤러리
“주민 참여가 도시재생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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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문을 연 산지천 갤러리는 옛 여관 녹수장과 금성장을 한 건물로 리모델링했다. 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제주 원도심의 풍경이 달라졌다. 오래된 호텔 1층에는 갤러리가 들어섰고, 포구와 가까워 윤락가였던 산지천 부근도 깔끔하게 정비돼 미술관들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12월 산지천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옛 여관 녹수장과 금성장을 하나의 건물로 리모델링해 만든 사진전문 갤러리다. 그 옆으로 고씨가옥과 유성식품 등 보존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는 모텔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아리리오 동문Ⅰ·Ⅱ가 있다. 탑동 광장에는 영화관과 자전거포였던 낡은 건물을 활용해 멋스러운 미술관으로 바꾼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바이크 뮤지엄이 들어서 원도심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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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다방



입구에 ‘쌀’이란 표지판이 있어 쌀집인가 했더니 그 위로 작은 ‘커피’(coffee) 간판이 있다. 맞은편 소머리국밥집 옆에도 예쁜 카페가 있고, 길모퉁이를 돌면 허름한 모텔 맞은편에 ‘수화식당·미래책방’이란 두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는 책방이 나온다.
원도심 골목 곳곳 이처럼 재기발랄한 책방과 멋진 미술관, 발랄한 공방과 전시장이 속속 생겨났다. 삼도이동의 제주도립병원 자리엔 복합 예술공간 이아가 들어섰다. 그 앞에는 1969년 문을 연 문구점 인천문화당이 아직 열려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 밖에도 박영수 특검의 본가로 알려진 300년 된 박씨초가, 중앙천주교회 부근 옛 남양방송 터, 이효리가 찾아 유명해진 한짓길 건물 ‘풍류’의 2층 옷가게, 성내교회 부근의 폭이 한 길도 안 되는 모퉁이 옷집 등 이야기와 볼거리가 가득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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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책방



조선시대엔 목안, 해방 이후는 성안으로 불리던 원도심은 1980년 제주도청이 새도심으로 이전하고 그 주변이 개발되면서 쇠락해갔다. 제주대학 등 교육기관과 도립병원 같은 공공시설마저 이전하면서 2010년께는 주민들마저 저녁만 되면 무서워 못 나다니는 지경이 됐다. 이런 가운데 5∼6년 전부터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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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초가



대동호텔 1층에 문을 연 갤러리 ‘비아아트’가 그 물꼬를 튼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여 년간 서울과 대전, 국외에서 미술 관련 일을 하던 박은희 비아아트 대표는 “2009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어릴 적 놀던 고향이 쇠락해 우울한 분위기였다”며 “부모님이 만들고 지켜온 호텔을 돕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해 고민한 끝에 2012년 호텔 한쪽에 갤러리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 뒤 이곳은 제주 문화인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2014년에는 이들과 함께 호텔이 있는 골목의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와 여관들을 전시장 삼아 첫 제주 아트페어를 열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열려 지난해 벌써 4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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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이동 예술공간 이아 부근의 인천문화당



비슷한 시기에 자치단체나 공공기관도 원도심에 활기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시는 제주대 병원 이전 등으로 비어 있던 원도심의 1층 점포들을 빌려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벌였다. 원도심에 올레길이 연결되고, 제주 민예총이 삼도이동 예술공간 이아 부근에서 프린지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은 “인천문화당 인근 영화관을 재단에서 매입해 문화공연장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인데 계획대로 된다면 이아와 함께 문화 복합공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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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



2016년부터 제주도 산하에 민간 위탁기관인 도시재생지원센터가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주민들과 함께 원도심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옛 제주성을 거닐다’ 행사나 도시재생대학도 그 일환이다.
이재근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주민이 참여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도시재생의 기본”이라며 “역사와 문화, 삶의 중심 공간이던 옛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